칼럼 행복스토리
보아스는 룻과 맺은 약속을 잊지 않고 지체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보다 더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있기에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어길 수 없기에 절차대로 진행합니다. 사명을 위해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말씀을 무시하면 안되고 아무리 급해도 말씀대로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 2순위이기에 안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지만 어려운 일을 자청하고 있습니다.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장소인 성문에 보아스는 올라가 앉습니다. 마침 기업 무를 자 1순위가 지나갑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증거이며 섭리입니다. 보아스가 성읍 장로 10명을 청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검증되고 증인으로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기업 무를 자 1순위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아무개’라고 부르면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증인들 앞에서 아무개에게 기업 무를 자를 하겠느냐고 물으니 이익이 될 것 같고 거절하면 법적 의무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여지고 장로들에게 지탄받을 수 있기에 하겠다고 합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의 책임과 희생이 따른다고 말하니 아무개가 손해가 될 것 같다며 거절하고 맙니다. 아무개는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이고 자신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를 때 신을 벗어 이웃에게 주는, 즉 나의 소유를 포기한다는 전례가 있습니다. 증인들 앞에서 아무개는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을 살리라는 법에 순종하지 않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아무개는 다윗과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의 기업 무를 자를 위해 사랑과 희생을 결정하여 영광스러운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자격 없는 우리를 사랑하고 희생하시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보아스는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사고 룻까지 사서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장로들과 모든 백성이 증인이 됩니다. 보아스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귀합니다. 기업을 무르는 것은 희생이 따르지만, 가치 있는 것이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섬김과 희생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에게 더 큰 보람과 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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